金聖根
(1885-1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성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김성근은 경북 의성군(義城郡) 비안면(比安面) 동부동(東部洞)에서 독립만세운 동에 참여하다 체포되어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3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3·1운동은 전국적으로 앙양되어 갔다. 특히 3월 8 일 대구 학생들의 의거와, 3월 12일 봉기한 비안 공립보통학교 학생 의거 및 쌍 계동 의거는 이곳 농민들을 더욱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3월 12일 비안 면 동부동에 사는 김석근(金石根), 임재호(林在虎), 박후도(朴後度), 박홍섭(朴洪 燮) 등 애국청년들은 김석근의 집에 모여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독립의 거에 발맞추어 이곳에서도 의거를 단행하여 나라의 독립을 쟁취할 것을 맹약하 고, 한지로 태극기 120여 개를 만들었다. 한편 이때 군중 약 100명은 동부동으 로부터 서부동 시장에 걸쳐 만세를 부르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들 양쪽의 시위대열은 서부동 시장에서 합류하여 독립만세를 부른 후 해산하였다. 한편 손동일(孫東一)은 임재호, 박후도, 박홍섭과 같이 김석근 집에서 만든 태극기를 3월 16일 오후 3시 서부동 시장에 모인 약 50명의 군중에게 나누어 준 후 군중 들과 같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하고 해산하였 다. 이 정보를 들은 이곳 경찰은 그 후 그들 주동 인물을 전원 검거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김성근은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 90도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3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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