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成伯
(1878)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星伯, 金成白, 치혼 이와노위츄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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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성백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9년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하얼빈지방회 회장, 1912년 대한인국민회 만주리아지방총회(滿洲地方總會) 총회장으로 선임되어 하얼빈 한인사회를 이끌었으며, 1921년 러시아 치타(知多)의 극동공화국(極東共和國) 정부 한인부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5월경 하얼빈(哈爾濱)에서 대한공립회(大韓共立會)를 설립하고 같은 해 10월 미주 국민회의 인준을 얻어 국민회 하얼빈지방회로 개편하였다. 이때 안중근(安重根)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처단 의거 연루자로 일제에 의해 지목되기도 하였다. 1910년 2월 하얼빈지방회 특별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되어 하얼빈 재류 한인들을 국민회 회원으로 가입시키는 한편, 동흥학교(東興學校) 교장으로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같은 해 음력 7월에는 하얼빈 남쪽 석두하자(石頭河子)에 특파원을 파견하여 횡도하자(橫道河子)ㆍ목릉(穆陵) 세 곳에 국민회 지방회를 설립하였다. 이처럼 4개 지방회가 설립되자, 1910년 10월 대한인국민회에 만주리아지방총회 설립을 요청하였다. 이에 국민회는 정식 지방총회가 설립될 때까지 하얼빈지방회가 만주 지역 4개 지방회를 총괄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1912년까지 하얼빈지방회 회장이자 사실상 지방총회장 역할을 하였다. 1912년 2월 국민회 중앙총회에서 만주리아지방총회가 정식 인준되자, 같은 해 5월 만주리아지방총회 총회장으로 선출되어 만주 지역 8개 지방회를 총괄 관할하였다. 같은 해 7월 가츠라 타로(桂太郞)가 하얼빈을 통과할 때, 가츠라 암살 계획 혐의로 러시아 관헌에 체포되어 이르쿠츠크로 추방되었다. 1920년 이르쿠츠크 조선인민회(朝鮮人民會) 찬성원으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10만 루불을 지원하였다. 1921년에는 러시아 치타로 이주하여 치타의 극동공화국 정부 한인부에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6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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