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成七
미상 ~ 1907-12-09·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성칠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7년 12월 경북 봉화군(奉化郡) 황엽령(黃葉嶺) 부근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일본군의 기습으로 체포되어 피살, 순국하였다. 1907년 11월 이후 경북 일대에서 활동하던 신돌석(申乭石)ㆍ이강년(李康秊) 의진 등의 세력이 크게 확대되자, 일본군 남부수비관구(南部守備管區)는 대대적인 진압작전을 벌였다. 남부수비관구는 대구에 주둔 중인 제14연대 제1대대 등을 동원하여 강원 남부와 경북 북부 지역에서 활동하는 의병에 대한 진압작전을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약 120~130명 규모의 박상태의진(朴尙泰義陣)은 찰곡(察谷)에 주둔하고 있다가 12월 8일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약 40명이 전사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9일에도 박상태ㆍ이명두(李明頭) 의병장이 이끄는 수백 명의 의진이 이들의 공격을 받아 120명이 전사하였다. 1907년 12월 9일 오후 일본군 천촌(川村) 소대는 황엽령에서 채(蔡) 모(某) 의병장이 인솔하는 120~130명이 설암(雪岩)에 있음을 탐지하였다. 이들은 6시간 이상 추격 끝에 백산(白山) 서남방에서 의병을 발견하여 야습(夜襲)하였다. 이 전투에서 의병장 채 모 이하 31명이 전사했으며, 부상자도 40~50명이나 되었다. 12월 25일까지 약 40일 동안 실시된 남부수비관구의 의병진압 작전으로 강원 남부와 경북 북부의 의병세력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김성칠도 1907년 12월 9일 일본군에 체포되어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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