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壽道
1913-03-05 ~ 1961-03-13·현대
이명·자·호 김고일(金高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수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3년 3월 5일 전라남도(全羅南道) 완도군(莞島郡) 청산면(靑山面) 여서리(麗瑞里)에서 출생했다. 1926년 4월 일본에 오사카(大阪)으로 건너와 소림제면소(小林製綿所) 직공으로 일을 하였다. 한국인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상황을 보고 노동자의 모임을 결성하고, 노동자들을 계몽하는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1933년 7월 대판에서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금속대판지부(金屬大阪支部)에 가입하였다. 8월 일본공산당 남지구(南地區) 조직자(오르그)의 권유로 입당하였다. 대판시위원회(大阪市委員會) 남지구 ‘함마분회’ 책임자로 「적기(赤旗)」, 「병사(兵士)의 친구」 등의 선전물을 배포하는 활동을 하였다. 1933년 9월 22일 일본공산당 당원과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프랙션으로 활동하다가 검거되었다. 1936년 4월 30일 대판지방재판소(大阪地方裁判所)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그는 5년간 형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고향인 전라남도 완도 여서리로 돌아 왔으나, 감옥에서의 후유증으로 48세 때인 1961년 3월 13일 사망하였다. 정부는 2019년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9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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