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水萬
(188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수만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8년 전북 고부(高阜)ㆍ태인(泰仁) 일대에서 이성화의진(李成化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의병장 이성화는 1908년 전북 고부에서 창의하여 고부ㆍ태인ㆍ순창(淳昌)ㆍ부안(扶安)ㆍ정읍(井邑) 등지에서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활동하였다. 1908년 3월 고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6월에는 정읍ㆍ태인ㆍ고부ㆍ순창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9년 1월에 6회, 2월에는 9회에 걸쳐 기습작전으로 일제 기관을 공격하였다. 1909년 4월 이성화의진은 신보현의진(申保鉉義陣)에 합세하여 순창군 가포곡(加布谷) 일대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였고, 5월 1일 태인군 인곡면(仁谷面), 5월 19일 고부군 벌말면(伐末面), 6월 20일 고부군 우덕면(優德面) 등지에서 일본 군경과 전투를 벌였다. 1909년 7월에만 일본 경찰, 헌병대, 수비대를 공격한 횟수가 26회에 이를 정도로 세력을 떨쳤다. 김수만은 이성화의진에서 1908년 9월 하순 전북 고부군 북부면(北部面) 운학동(雲鶴洞)과 10월 20일경 북부면 흔랑동(欣浪洞) 등지에서 군수품과 화승총 등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12월 20일경에는 태인군 서촌면(西村面) 대곡동(大谷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7월 2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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