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壽莢
(1853) ~ 1896-03-29·조선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수협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의성(義城) 사람이다. 김상종(金象鍾) 의진의 관향장(管餉將)으로 경북 의성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894년 일제는 청일전쟁을 계기로 동학농민군을 탄압하면서 한국에 대한 침략을 노골화시켜 갔다. 그러나 러시아·독일·프랑스의 삼국개입으로 말미암아 국제정세가 변화하면서 친일세력이 약화되자, 이에 불안을 느낀 일제는 세력을 만회하기 위해 급기야 1895년 8월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어서 일제는 친일정권을 사주하여 단발령과 복제개혁을 강행하였다. 이러한 일제의 침략에 대해 당시의 민중들과 유생들은 국권의 위기의식을 절감하고 분연히 궐기하여 의병을 일으켜 대항하였다. 이 때 영남지방에서 의병 봉기는 태봉(胎峰) 전투에서 실패한 후, 안동부를 중심으로 의병장들이 다시 흩어진 군사들을 수습하여 전투를 준비하였다. 그중 안동 의병진은 김도화(金道和)를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병력을 보충하여 안동읍(安東邑)을 중심으로 진영을 설치하였다. 이런 때 경북 의성지방에서는 김상종을 중심으로 의병이 거의하였다. 김상종 의진에서 김수협은 관향장으로 의병대원들이 대일항전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활동을 하였으며, 그외 소모장에 김수욱(金壽旭), 중군장에 권대직(權大稷), 선봉장에 김수담(金壽聃) 등이 있었다. 또한 이 시기 경북지역에는 의성지방 뿐만 아니라 영양의 김도현(金道鉉), 진보의 허 훈(許薰) 등이 의병을 일으켜 호응하고 있었다. 김상종 의진은 황산(黃山)을 거점으로 활약하였으나, 1896년 3월 29일 일본군과 접전하여 그들의 우세한 화력 앞에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분패하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관향장 김수협과 선봉장 김수담이 불행히도 전사, 순국하였다. 그러나 김상종 의진은 을미의병이 종결된 이후 「을사륵약(乙巳勒約)」의 내용이 알려지자 각지의 유림들에 통문을 보내는 등 재궐기를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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