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淑卿
1886-06-20 ~ 1930-07-27·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숙경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북 경원(慶源) 사람이다. 훈춘(琿春) 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황병길(黃炳吉)의 부인이다. 1886년 함북 경원군의 가난한 농가에서 출생하였으며, 1897년 12세의 어린 나이에 황병길에게 시집갔다. 1905년 을사조약의 체결에 분개하여 남편 황병길이 항일 운동을 일으키자 여기에 참여하여 함께 활동 중 체포되어 10여일 동안 구류를 살았다. 1910년 남편과 함께 러시아 연해주 연추(煙秋:노보끼예브스크, 현재의 끄라스끼노)지역으로 이주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11년에는 다시 훈춘으로 이사하여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국내에서 3·1운동이 전개되자 여기에 참여하였으며, 동년 9월 29일에는 훈춘 동문내(東門內) 박봉식(朴鳳植) 집에서 훈춘대한애국부인회(琿春大韓愛國婦人會)를 조직하여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함께 활동한 주요 간부로는 회장 송신덕(宋信德), 총무 권정숙(權貞淑), 회계 오신애(吳信愛), 서기 김현희(金顯姬)·황영은(黃永恩) 등을 들 수 있다. 본회는 목적을 독립운동의 후원, 여성의 교육과 여권신장, 부상당한 군인의 구호에 두고 있었으므로 이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아울러 동지들과 의연금 모금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단발하여 월자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패물이나 옷감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마련에 노력하기도 하였다. 1920년 4월 남편이 사망하였으며, 동년 10월에는 일제의 간도출병으로 독립운동을 하였다는 혐의로 일군에 체포되어 고생을 겪기도 하였다. 1930년 7월 27일 급성위장염으로 만주에서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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