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順西
1896-04-19 ~ (1922)·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순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4월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원곡면(元谷面)과 양성면(陽城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되어 옥중 순국하였다. 1919년 3월 25일 시작된 안성군 원곡면의 만세운동은 4월 1일과 2일에 대규모로 전개되었다. 원곡면의 6개 동리가 참여하는 연합 시위의 성격을 띠었다. 김순서는 1919년 4월 1일 외가천리(外加川里) 원곡면사무소 앞에서 1,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양성주재소와 면사무소, 우편소가 있는 양성면 동항리(東恒里)로 향하였다. 원곡면에서 출발한 시위 행렬이 양성면에 이르자, 마침 만세시위를 마치고 돌아가던 양성면민들도 다시 합류하였다. 2,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 군중은 10시 무렵 순사주재소에 이르렀다. 김순서는 앞장서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원곡면 사무소 및 순사기숙사 1동과 공문서, 물품 등을 소각하였다. 이어 양성우편소를 파괴하고, 안성으로 통하는 전화선을 절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ㆍ가택침입ㆍ방화ㆍ기물 손괴ㆍ전신법 위반ㆍ소요죄(騷擾罪)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22년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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