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順千
1894-04-19 ~ 1951-12-05·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順天, 金在順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순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4월 4일 충남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재 당진군)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대호지면 면장 이인정(李寅正)과 면직원 이대하(李大夏), 송재만(宋在萬) 등은 4월 4일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4월 3일 대호지면장 명의로 각 구장 앞으로 도로수선(道路修繕)에 관한 공문을 보내 4월 4일 주민들을 공식적으로 동원하여 만세운동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4월 3일에는 애국가를 인쇄하고 독립선언서도 등사하여 각 마을에 배포하였다. 4월 4일 대호지면 앞 광장에 도로수선을 위장하여 600여 명의 주민이 모였다. 광장 한 가운데에는 대형 태극기가 휘날렸다. 이인정이 군중 앞에 나서서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군중들은 목이 터져라 만세를 따라 외쳤다. 그는 이날 시위대의 선봉이 되어 시위군중에게 태극기를 배부하고 독립만세를 연호하며 장정리를 거쳐 천의시장(天宜市場)으로 행진하였다. 사전 연락으로 도중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여 시위대는 1,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군중들이 천의시장에 이르렀을 때 주재소에서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제지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일본 경찰에게 만세를 부를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고, 군중의 기세에 눌린 그들은 만세를 몇 번 따라 부르고 도망쳤다. 시위군중은 오후 4시경까지 정미면사무소(貞美面事務所)와 천의주재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이고 일단 해산하였다. 이때 당진경찰서(唐津警察署)에서 지원 나온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시위대와 충돌하였다. 다급해진 경찰이 발포하자 분노한 군중들은 주재소로 달려가 건물과 기물을 파괴하며 격렬히 항쟁하였다. 김순천은 만세시위 직후 산골로 피신하였으나, 1921년 1월 21일 체포되어 4개월여의 옥고를 치르던 중 이해 5월 2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소요, 건조물 손괴, 상해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3월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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