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時中
미상 ~ 1909-07-22·조선
이명·자·호 號:希山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시중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강원도 정선군 동면 고허리(旌善郡 東面 古許里)에서 출생하였다. 1907년 문경(聞慶)의 이강년(李康秊)이 영월(寧越)의 김상태(金尙台)와 같이 제천(堤川)·단양(丹陽) 등지에서 의병운동을 재개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김시중은 김상태를 방문하여 운강 의진에 가입하고 좌선봉장(左先鋒將)에 임명되어 휘하 의병을 모집하고 무기를 준비하여 일군을 격파할 계획을 세웠다. 1907년 10월 31일에는 청풍(淸風)에서 120명의 부하를 인솔하고 군자금(軍資金)을 모금하였다. 1907년 11월 11일 경북 순흥읍(順興邑)을 습격하였는데, 이것은 이강년 부대 2백 명과 신돌석 부대 3백 명의 연합전략이었다. 1909년 6월에는 부하 약 50명을 거느리고 정선군 동상면 산내동(東上面 山內洞) 부근에서 활약하였다. 1909년 7월 22일 스스로 의병장이 되어 남은 부하를 이끌고 정선군 동상면에서 일본 관헌과 격전하다가 마침내 적탄에 맞아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1968
독립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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