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連吉
1891-10-28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연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4년 8월 중국 길림성 연길현에서 신대한독립단 단원 이동옥 등이 주도한 군자금 모집 활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일찍이 간도로 망명하여 봉천성(奉天省) 동빈현(東濱縣)에 군거를 둔 신대한 독립단(新大韓獨立團)에 가입하여 단원으로 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24년 7월 16일 단원 김만산(金萬山)·이동옥(李東玉, 이명 李光洙)·이용하(李 龍河) 등과 함께 길림성 연길현(延吉縣) 국자가(局子街)에서 군자금 모집을 계획 한 뒤, 연길현 지인사(志仁社) 구수동(九水河) 용수동(龍水洞)의 엄동윤(嚴東允) 을 방문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려 하였으나, 부재중이므로 월말까지 군자금 400원 을 마련할 것을 당부한 뒤 귀환하였다. 다음 달인 8월 8일 이동옥·박봉관(朴鳳官)·박종률과 함께 권총 등 무기를 휴대하고 엄동윤의 집을 방문하여 다시 군자금을 모집하려 하였다. 그러나 전 에 요청한 군자금이 마련되지 않은 관계로 군자금 3원과 마포(베) 1필만을 제공 받아 돌아왔다. 10월 10일 양진수(梁珍壽) 등과 함께 왕청현(汪淸縣) 춘융향(春融鄕) 소백초구 (小百草溝) 양반구용묘촌(楊盤邱龍卯村)을 방문하여 이원익(李元極)·김공구(金 共久) 등으로부터 중국화폐로 800여 원을 모집하였다. 1925년 3월 6일 청진지방법원(淸津地方法院)에서 소위 강도·대정(大正)8년제 령(制令)제7호 위반으로 징역 6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5년 4월 13일 경성복 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함흥형무소에서 4년 5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다 1929년 4월 26일 출감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3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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