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淵植
(188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연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옹진(甕津)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2월 말 민족대표 중 1명인 박희도(朴熙道)와 처남 김명신(金明信)이 옹진의 기독교회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옹진읍의 이경호(李京鎬)는 이 독립선언서를 옹진 각지에 배포하였으나, 3월 1일 이를 알아차린 일본헌병대에 구속되는 등 기독교 중심의 만세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어 3월 8일 천도교인 조동룡,김봉구 등이 중심이 되어 읍내 고천잡화점(古川雜貨店) 앞 네거리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13일에도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체포된 김연식은 1919년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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