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泳植
1899-08-02 ~ 1930-07-06·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熊星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영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5년 1월 일본 도쿄에서 사상단체 일월회의 편집부원으로 기관지 『사상운동』 간행에 참여하였다. 1925년 4월 일본 도쿄에서 출발하여 부산에서 개최된 전선민중운동자대회에 조선노동총동맹(朝鮮勞動總同盟) 대표로 참석하다가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1925년 8월 16일 전라남도 목포에서 개최된 목포청년회의 정기총회에서 회칙개정위원을 맡았다. 같은 달 30일 목포에서 사상단체 전위동맹을 조직하는데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25년 10월 13일 목포에서 창립된 노동총동맹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음력 8월 목포 조선제유주식회사(朝鮮製油株式會社)에서 한국인 노동자 백여 명이 참여한 제유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하였다. 제유노동조합은 1926년 1월 노동 임금의 인상, 노동시간의 단축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3월 체포되어, 6월 광주지방법원에서 ‘건조물 침입(建造物 侵入)·소요(騷擾)·훼기(毁棄)·상해(傷害)·업무방해(業務妨害)’의 혐의로 예심에 넘겨졌다가 면소처분되었다. 1926년 11월 서울에서 개최된 정우회(正友會) 설립에 참여하여 서무부에 소속되었다. 1927년 3월 목포청년회 총회에서 임원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5월 조선사회운동자중앙협의회(朝鮮社會運動者中央協議會)에 참여하여 의안작성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7년 6월 사회사정조사연구사(社會事情調査硏究社) 창립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27년 10월 목포청년회 활동으로 인해 목포경찰서에 검속되었다. 같은 해 12월 신간회 목포지회 정기총회에 참여하여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정부는 202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3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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