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永祚
1899-09-14 ~ 1976-07-14·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영조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남 고성(固城) 사람이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 때 시위행렬의 선두에서 애국가를 연주하는 등 시위군중의 사기를 드높이게 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진주에서 김재화(金在華)·강달영(姜達永)·박진환(朴進煥) 등이 주도하는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여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시민들에게 배부하는 한편 인근 마을에 연락, 18일 오전 진주 비봉산(飛鳳山)에 집결하도록 하고 시민 3만여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선두대열에서 활약하다가 일본헌병과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해 4월 22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2년에는 경남 의령군(宜寧郡)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른 구여순(具汝淳)과 함께 구재서(具再書)를 찾아가 구여순이 중국 상해(上海)로 가기 위한 독립운동자금을 모아 전달하는 등 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2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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