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玉南
(1902) ~ 미상·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옥남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강진(康津) 사람이다. 1921년 11월 열강(列强)의 대표들이 미국 워싱턴에서 군비감축회의(軍備減縮會議)를 개최하고 만주를 비롯한 원동문제(遠東問題)를 의제로 거론한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에서는 이승만(李承晩)·서재필(徐載弼)·정한경(鄭翰景) 등을 대표위원으로 선정하여 워싱턴 군비감축회의에 한국독립청원서(韓國獨立請願書)를 제출하였다. 1921년 11월 14일 전남 목포의 사립영흥학교(私立永興學校)에 재학 중 위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워싱턴 군비감축회의에서 거론될 한국 독립문제에 대한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세계 만방에 널리 알릴 목적으로 동교 학생 및 정명여학교(貞明女學校)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여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1921년 12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22년 3월 1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199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