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龍福
(1900)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世權, 金瑞憲, 金瑞根, 金瑞勳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용복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하여 군자금 모집에 힘쓰고 있던 김정하(金鼎夏)를 만나 국내에서 독립운동자금 모집 방안을 협의하였다. 이후 국내에 있는 친일파 처단과 청진경찰서(淸津警察署) 폭파 등에 사용할 폭탄 6개를 김정하로부터 받아 박주호(朴周浩)·정무봉(鄭茂奉)과 함께 9월 23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여 9월 24일 함경북도 청진항(淸津港)에 도착하였다. 이때 청진부(淸津府)에 거주하고 있던 지인 김기도(金基道)와 거사 계획을 논의하고 있던 중, 이들의 움직임을 탐지한 청진경찰서 경찰에 의해 박주호와 정무봉이 체포되자 피신하여 러시아로 돌아왔다. 러시아 연해주 니콜리스크에서 머물던 중 1921년 6월 채덕승(蔡德勝)과 함께 일제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같은 해 7월 6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과 ‘폭발물취체벌칙(爆發物取締罰則)’ 등을 이유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1921년 9월 4일 공소를 취하하여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2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