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容成
1894-09-13 ~ 1954-05-25·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溶成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용성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진위(振威) 사람이다. 진위군 오성면 학현리(梧城面 鶴峴里)에 살았으며 펑소 독립운동을 하기로 결심해 오던 중 1919년 4월 1일 오성면 안화리(安化里)에서 진위군의 첫 번째 독립만세 시위를 벌이자 이에 호응하여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는 4월 3일 이곳에서 공재록(孔在祿)·이사필(李思弼) 등과 같이 주동이 되어 다수의 군중과 함께 동리 뒷산 봉오산(鳳梧山)에 올라가 봉화를 올리며 독립만세를 절규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리하여 이해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으나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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