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用聲
1905-01-07 ~ 1944-03-07·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용성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남 정평(定平) 사람이다. 1930년 8월경 정평농민조합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농민조합의 활동을 극히 불온시한 일경이 1931년 1월부터 간부급 조합원들을 모두 검거하기 시작함에 따라 다른 동지 145명과 함께 붙잡혔다. 정평농민조합의 전신(前身)은 1928년 2월경 원회극(元會極) 김장렬(金章烈) 등의 주도로 지주의 횡포에 맞서 소작인의 권리 옹호를 주요 목적으로 하여 결성된 정평농민동맹(定平農民同盟)이었는데, 1930년 3월 29일 대대적인 항일시위를 동반한 농민동맹대회를 거쳐, 동년 6월 8일 기존의 농민동맹 조직을 해소하고 26개 조의 새로운 행동강령을 제정하면서 농민조합으로 개편된 것이었다. 그 후 정평농민조합은 이른바 합법적 및 비합법적인 두 가지 방법을 다 원용하면서 경제적 차원만 아니라 정치적 차원의 요구까지도 광범위하게 제기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는데 일제는 이를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고 공산주의 사회제도를 실현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하여 극심한 탄압을 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붙잡힌 후 그는 1932년 12월 9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1933년 12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의 형이 그대로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3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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