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龍洙
(1890)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용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중국 혼춘현에서 혼춘한민회 모험대 분대장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고, 1922년 1월 러시아 한족공산당사령부 대대장 강석훈과 대한군정서와 연합작전으로 함북 경원의 신건원 순사주재소와 수비대를 공격하였으며, 1923년 고려혁명군특무기관부 모연대장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음력 3월 길림성 혼춘현(琿春縣)에서 혼춘한민회(琿春韓民會) 경호부(警護部) 소속 모연대(募捐隊)와 모험대(冒險隊) 분대장으로서, 혼춘과 국내 함북 경원(慶源)·종성(鍾城)·온성(穩城)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5~6월에는 대원 김운서(金雲瑞)·이승준(李承俊) 등과 밀정 3인을 처단하는 활동을 하였다. 한편, 대한군정서원(大韓軍政署員) 김학섭(金學燮)과 러시아 한족공산당(韓族共産黨) 사령부 대대장 강석훈(姜錫勳) 등이 러시아 시지미에서 만나 국내로 잠입하여 일제 관공서를 공격하고 무기 등을 확보할 것을 계획하자, 이 계획에 합류하였다. 그리하여 1922년 1월 5월 강석훈의 지휘 아래 모험대원 주용삼(朱龍三) 등과 함께 함북 경원(慶源)의 신건원주재소(新乾源駐在所)를 공격하였다. 이후 혼춘 대황구(大荒溝)를 중심으로 대원을 모집하여 1923년 10월 대황구 인근 빈랑구(檳榔溝)에서 고려혁명군특무기관부(高麗革命軍特務機關部)를 조직하고 모연대장(募捐隊長)으로 선임되어 활동하다가 1925년 1월 체포되었다. 1925년 6월 5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소위 불법체포감금, 강도살인, 살인미수로 대정8년제령제7호 위반으로 징역 15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7월 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3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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