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容寅
(1915-02-05) ~ (1939)·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용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김용인은 1933년 고창청년동맹 집행위원장을 지낸 김명환(金明桓)과 왕래하며 그에게 감화를 받고 새로운 사상에 공명하게 되었다. 김명환은 전주공립보통학교를 중도 퇴학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의 사립 정칙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를 잠시 다니다, 고향으로 돌아와 1928년 6월 고창청년동맹의 창립에 관계하고 정치문화부 위원을 지냈으며, 그해 8월 고창청년동맹의 집행위원장으로 추대되어 활동했던 중견의 청년활동가였다. 김용인은 1935년 2월 함경남도 함주군(咸州郡) 흥남읍(興南邑) 방면으로 일하러 갈 때 김명환에게 함경도 지방 노동자를 동지로 규합할 방법을 교육받고 동지(同地)에서 이 지역 거주 노동자 박병엽(朴炳燁), 손동락(孫東洛) 등에게 접근하여 동지로 규합하였다. 그 뒤 노동자들과 회합하여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고 새로운 사회의 실현을 위한 의식교양을 당면 목적으로 하는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김용인은 1934년 이후 독서회 조직과 독서회 회원의 모집, 노동자 동지를 획득하는 등의 활동을 통하여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의 고취, 신사상 연구에 주력하던 중 1935년 4월경 정읍경찰서에 체포되었고, 1936년 4월 8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0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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