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容俊
1881-02-28 ~ 1936-06-22·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용준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기도 화성(華城) 사람이다.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홍 면(洪면) 등이 계획하여 전개한 화성군 송산면(松山面)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는 3월 26일부터 송산면 사강리(沙江里) 일대에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100여 명의 주민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고, 사강 장날인 이달 28일에도 다시 홍 면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 참여하였다. 이날 오후에 송산면 뒷산에 1천여 명의 군중이 모여 대대적인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고 있을 때, 일본인 순사부장 야구광삼(野口廣三)이 출동하여 이를 해산시키려 했으나, 군중은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야구광삼은 주동자 홍 면 외 2명을 체포하여 꿇어 앉혀 놓았는데, 갑자기 홍 면이 일어서서 독립만세를 외치자,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야구광삼이 권총을 발사하여 탄환이 홍 면의 어깨를 관통하였다. 홍 면이 비명을 지르고 쓰러지면서 지기에게 발포한 일본인 순사를 죽이라고 외치는 광경을 본 만세시위 군중의 분노는 일시에 폭발하였다. 이에 그는 자전거를 타고 사강리 주재소를 향해 도주하는 일본인 순사를 홍 면의 동생인 홍준옥(洪준玉)·장인 김명제(金命濟)·김교창(金敎昌)·왕광연(王光演)·문상익(文相翊) 과 함께 추적하여 도로에서 포위했다. 이 때 이태순(李泰順)이 발로 자전거를 차서 넘어뜨리자 투석으로 일본인 순사를 살해하는 등 격렬하게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1920년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소요·살인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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