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用煥
1892-08-01 ~ 1919-08-18·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용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충남 서산(瑞山) 사람이다. 1919년 대동단(大同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김용환은 동 단에 가입하여 군자금 지원에 주력하였다. 즉 직물업에 종사하면서 종제(從弟)인 정두화(鄭斗和) 등으로부터 6천 6백여 원의 거금을 거두어 동 단의 활동자금으로 제공하였다. 동년 음력 6월에는 당시 중국 항주(杭州)에 거주하던 신규식(申圭植)에게 대동단의 외교사무를 위임토록 하라는 동단의 밀명을 받고 중국 항주로 건너갔으나 불행히 콜레라에 감염되어 항주의 절강병원(浙江病院)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순국하였다. 김용환은 병상에 있어 공무에 지장이 있는 것을 두려워하여 국내의 본가에 자신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항일운동을 전개하면서 객지에서 죽는 것이 오히려 영광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가 남긴 유묵(遺墨)으로는 그의 일기와 시국에 대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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