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龍煥
1907-01-20 ~ 1957-10-30·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용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여수(麗水) 사람이다. 1930년 1월 25일 전남 여수에서 광주학생운동이 전국적으로 파급되고 있을 때 유독 여수보통학교(麗水普通學校)에서는 동조 시위가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항일격문 80여 매를 작성하여 교실 및 교정 등에 살포한 후 일경에 붙잡혔다. 1930년 3월 13일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33년 7월 여수노동조합(麗水勞動組合)을 조직하고 교통운수부(交通運輸部)를 담당하여 활약하였으며 노동조건 개선투쟁 및 여수청년전위동맹(麗水靑年前衛同盟)을 결성하는 등 활동하다 일경에 붙잡혔다. 장기간의 구금 끝에 1936년 6월 29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미결구류일수 1년 6월 본형산입)을 선고받고 6월 30일 출옥하였다. 1937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할 것을 결심하고 간도로 탈출하려다가 신의주(新義州)에서 붙잡혀 소위 조선사상범 보호관찰령에 의하여 항상 감시를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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