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鎔勳
1912-02-05 ~ 1983-10-11·현대
이명·자·호 金溶勳, 海岩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용훈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평원(平原) 사람이다. 1933년 10월 만주에서 일어난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이 평양에도 파급되어 시민들이 만세시위를 펴자 일경은 무차별 발포하여 동족들을 학살하였다. 이 광경을 목격한 그는 항일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고 고향인 평원군에서 김성용(金成龍) 등 50여명의 청소년을 규합하여 어은소년야학회(漁隱少年夜學會)를 조직하였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문맹퇴치를 가장하며 일제식민통치를 비판하는 등 청소년들에게 항일민족의식을 고취하는데 힘을 쏟았다. 이와 같은 활동을 펴던 중 그는 1936년 8월 일경에 붙잡혀 평양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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