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云用
1896-09-17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成根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운용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6년 서울에서 창의단원(倡義團員)으로 일제의 주요 기관을 폭파하는 계획을 세우고 경성부청(京城府廳)을 폭파하는 임무를 맡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창의단원 김응선(金應先)ㆍ전좌한(全左漢)ㆍ계의산(桂義山) 등은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와 경성부청의 각 신청사(新廳舍), 조선신궁(朝鮮神宮), 조선은행(朝鮮銀行), 종로경찰서(鍾路警察署)에 폭탄을 투척하는 동시에 조선독립사상을 고취하는 포고문을 살포하기로 합의하였다. 김응선ㆍ전좌한은 1925년 음력 9월 초순부터 12월 초순까지 쿠로루산칼륨 5병, 다이너마이트 10개, 도화선 1장(丈) 5척(尺), 뇌관(雷管) 10개 등을 수집했다. 그리고 이를 재료로 폭탄 6개를 제조하여, 그 중 1개를 산에서 시험으로 폭발시켜 위력을 확인한 후, 남은 5개를 서울로 운반하였다. 1926년 1월 28일 김운용은 김응선ㆍ정명옥(鄭明玉)ㆍ송암우(宋岩于) 등과 상경한 뒤, 30일경 계의산으로부터 일제 주요기관 폭파계획을 듣고 이에 가담하였다. 이 계획에 따르면, 다음날 31일 새벽 정명옥은 조선총독부의 신청사, 김운용은 경성부청의 신청사, 송암우는 종로경찰서, 김응선은 조선은행, 계의산은 조선신궁에 각각 일제히 폭탄 1개씩을 투척하는 동시에 포고문을 살포하기로 하였다. 이들은 숙소였던 서울 청진동(淸進洞) 진일여관에 폭탄과 포고문을 보관하였으나, 일제 관헌(官憲)에게 탐지되어 거사 3시간 전에 체포되었다. 1927년 8월 3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폭발물취체벌칙(爆發物取締罰則)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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