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有坤
1897-04-04 ~ 1920-10-03·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유곤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영일(迎日) 사람이다. 1919년 3월 18일 전국 도처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윤영복(尹永福)·오용간(吳用干)과 함께 덕성교회에 모여 거사를 계획하고 3월 22일 영일군 청하면(淸河面) 덕성리(德城里) 시장에 모인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일군 헌병의 발포 사격에도 굴하지 않고 시위행진하다가 붙잡혔다. 이해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으나 고문의 여독으로 1920년 10월 3일 24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2
건국포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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