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崙求
1893-11-05 ~ 1950-04-15·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윤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1일 손병희 등 이른바 민족대표들이 독립을 선언한 이래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전개되자 그는 고향인 경기도 양평군(楊平郡) 용문면(龍門面) 광탄리(廣灘里)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기로 결심하였다. 3월 30일, 광탄리에 군중들이 모이자 주도자의 한 사람인 조영호(趙瑛鎬)는 태극기를 앞세우고 군중들을 향하여 “독립은 천운(天運)이니 사람의 힘이 미칠 바가 아니다. 일본인은 모두 본적지에 귀국하라. 예컨대 1개의 계란이라도 쌍계이면 2개의 계란에서 2개의 병아리가 나오는 것이니, 1국으로 함은 쉽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연설하였다. 이는 우리나라가 절대 일본에 병합될 수 없음과 독립의 필연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이때 그는 군중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선창하는 등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5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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