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允國
1894-02-0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윤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현(輯安縣)에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검찰(檢察)ㆍ도감찰(都檢察) 등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은 3ㆍ1운동을 계기로 보다 효과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기 위해 보약사(保約社)ㆍ향약계(鄕約契)ㆍ농무계(農務契)ㆍ포수단(砲手團) 등 주로 의병운동(義兵運動) 계열의 인사들이 1919년 4월 연합하여 결성하였다. 본부(本部)는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 두었으며, 도총재는 박장호(朴長浩), 부총재는 백삼규(白三圭)였으며, 도총재부 산하에는 사무기구로 총단(總團)이 있었는데 총단장에 조맹선(趙孟善), 부단장에 최영호(崔永浩)ㆍ김원섭(金元燮)이 활동하였다. 김윤국은 1919년 음력 4월 1일 대한독립단 검찰, 7월 1일 도감찰로 임명된 이래 집안현 매대령(梅台嶺)에서 일제 밀정을 체포하여 유하현 삼원보에 있는 대한독립단 중앙총부(中央摠部)에 보냈다. 또한 군자금을 모집하여 동단 총무원 임사진(林士進)에게 보냈으며, 독립운동 세력과의 통신을 담당하였다. 1919년 음력 7월에는 집안현 우천구(于川溝)에서 일제 밀정 원치준(元致俊)을 체포하여 동현(同縣) 소서차의 홍대윤(洪大潤)에게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0년 7월 19일부터 26일까지 일제 경찰이 통구(通溝)를 기점으로 독립운동자들에 대한 검거에 나설 때 김윤국도 체포되었다. 같은 해 9월 1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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