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允祥
(1900)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윤상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3월 24일 경상북도 김천군(金泉郡) 김천면(金泉面)에서 김윤상은 마을 청년들인 최응수(崔應洙)·김영훈(金泳勳)과 함께 욱동(旭洞) 가로상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미곡상, 재봉업, 이발업 등을 하던 20세 전후의 청년들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가 일본 헌병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 김천지청(金泉支廳)에서 소위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의 즉결처분에 처해져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201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9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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