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潤泰
(1879)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윤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김윤태는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 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24일 강계군의 강계읍 김경하(金京河) 방에서 독립운동을 하고자 기독교인과 지역 유지들이 모여 태극기에다가 태극을 중심으로 원을 지어 특별 한 간격을 두지 않고 친필로 이름을 돌려썼는데, 김윤태를 비롯한 17명이 서명 하였다. 이들은 평양신학교 학생 주하룡(朱夏龍)의 도움으로 독립선언서와 태극 기를 각 1,000여 매를 등사하였다. 이들은 4월 8일 오전 11시 교회당 종소리에 맞춰 선언서와 국기를 배부하며 2,000여 명의 군중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가행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참가자 4명은 그 자리에서 순국하고 10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때 김윤태를 비롯한 31명이 일경에 의해 체포되었다. 김윤태는 7월 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보 안법 및 출판법, 소요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9월 18일 고등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