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應三
(1910-12) ~ (1942-06)·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韓道明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응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선천(宣川) 사람이다. 남경 한국애국단에 입단하여 1940년 8월에 제남전투(濟南戰鬪)에 참전하였으며 중국중앙군관학교 4분교와 통계국 참모훈련반을 졸업하였다. 1941년 3월 1일에는 임시정부 청사에서 광복군 제3징모처 위원 임명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는데 그는 징모3분처 위원 겸 훈련조장에 임명되어 금화(金華) 지역에서 대적선전방송, 정보수집 및 일본군 포로 심사 등의 일을 수행하였다. 1942년에 절동전투에 참전하여 절강성 난계역(蘭溪驛)에서 부상을 당하고, 그후 후유증으로 영면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이 추서하였다.
1991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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