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應濟
1872-04-16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응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19년 4월 4일 새벽에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낙양면(樂壤面) 내낙리(內洛里) 자신의 집에서 천도교인 김병하(金炳河)·김이순(金利淳)·이여종(李呂鍾)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하였다. 김응제는 이들과 함께 태극기 2폭을 만들어 이두영(李斗榮)·김혁근(金赫根)에게 주고, 이들에게 주민을 이끌고 지석리 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벌이라고 권고하였다. 김응제의 지시를 받은 이두영과 김혁근은 오후 1시경 지석리 시장에서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응제는 4월 5일 오후 10시경부터 김병하·김이순·이여종과 함께 낙양면 내낙리와 지상리(支上里) 등지를 다니며 주민들에게 지석리 시장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이자고 설득 한 후, 오후 12시 경부터 4월 5일 오전 2시 경까지 면민 약 100명을 이끌고 지석리 시장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이어 김응제는 오전 3시 경 김병하·이여종 등과 함께 지하리(支下里)로 이동하여 면민 약 100명을 이끌고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시위 후 체포된 김응제는 1919년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협박·상해’로 징역 1년을 받았고, 1919년 7월 10일 경성복심법원과 1919년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김응제는 1920년 4월 28일까지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7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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