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義宗
1894-04-08 ~ 1968-07-05·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의종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천도교 가정에서 자란 그도 천도교인으로서 신성중학교에서 신문화를 배우고 민족정신에 눈을 떴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해외의 독립운동 단체들은 천도교에 대표를 파견해 주도록 요청해 왔다. 그러나 천도교의 명맥을 지켜야 된다는 교주 손병희의 교지를 받들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지는 않고, 다만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에는 대표를 파견하도록 하였다. 이에 1차로 최동오(崔東旿)에 이어 그가 2차로 천도교를 대표하여 임시정부에 파견되었으며, 3차로 신 숙(申肅)이 상해에 파견되어 천도교 상해교구실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통일당(統一黨)을 조직하고, 그는 경제 담당이 되어 자금 조달에 전념하였다. 이에 그는 군자금 모집차 국내에 파견되어 활동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출옥 후에는 다시 만주로 건너가 조선일보 지국을 경영하는 등 항일활동을 계속하였다고 한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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