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益時
1885-09-12 ~ 1943-06-15·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익시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칠곡(漆谷) 사람이다. 그는 1912년 만주 용정(龍井)으로 건너가 6년 반만인 1918년 귀국하였다. 1919년 3월 11일 칠곡군 북삼면(北三面) 숭오동(崇烏洞)에서 안도수(安道秀)와 함께 3월 12일 약목(若木) 장날을 기하여 주민과 합세,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여 추진 중에 일군 헌병에게 미리 탄로되어 주동자로 붙잡혔다. 같은 해 4월 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여 5월 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어 징역 6월형을 받았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6월 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2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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