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寅甲
(188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인갑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황해도 곡산군(谷山郡)에서 천교도를 중심으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시위를 벌이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1931년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결성된 선도교(仙道敎)에 가입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월 3일 곡산 출신 천도교인 이경섭(李景燮)은 곡산읍에서 이재경(李載景) 등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고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이재경은 김인갑,강덕근(康德根) 등과 거사를 논의하면서 각 면의 천도교인에게 비밀리 연락을 취해 곡산읍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이튿날인 4일 오전 10시경 김인갑은 강덕근,이재경,이경섭,조병하 등과 함께 곡산읍에서 '조선독립기'를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송항리(松項里)에서 읍내를 향해 행진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헌병분대장이 대표자만 남고 해산을 권유하자, 대표자 7명만 남았다가 이들 모두 체포되었다. 이때 붙잡힌 김인갑은 1919년 5월 31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9년 4월 김중섭(金重燮),김홍기(金弘基) 등이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선도교를 조직하자, 김인갑은 1931년 6월 강원도 평강군(平康郡) 현내면(縣內面) 이목리(梨木里)에서 신태순(申泰淳)의 권유로 선도교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나 1935년 4월 평강경찰서의 대대적인 검거선풍으로 간부들은 피신하고 단원들은 가평군 화악산에 피신하여 계속 지하운동을 벌였으나, 김인갑 은 1937년 8월 붙잡히고 말았다. 이로 인해 1939년 8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1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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