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仁國
(186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인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북 구성군(龜城郡)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구성군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1일 시작되어 3월 30일과 31일에도 대대적인 시위 끝에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4월 1일에는 읍내 및 남시(南市), 신시(新市) 등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읍내에서는 오전 10시경 900여 명이 시위를 벌였고 일본헌병과 군대가 해산시키려 했으나 끈질기게 투쟁하다 오후 5시에 이르러서야 부상자 3명을 내고 해산하였다. 남시에서는 전날의 투쟁에 이어 만세운동을 계속하였다. 신시에서는 오전 10시경에 1,500명의 군중이 시위를 벌이다 경찰의 발포로 부상자 5명, 피검자 30명이 발생하였다. 김인국은 4월 1일 사기면(沙器面) 신시장(新市場)에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1919년 5월 2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1919년 6월 28일 고등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06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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