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仁根
1899-09-20 ~ 1970-08-28·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인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평남 강서(江西) 사람이다. 1919년 4월 4일 황해(黃海) 평산군(平山郡) 보산면(寶山面) 남천(南川) 장날 두무리(斗武里)에서 500여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시위행진을 폈으며 동년 9월 5일에는 상해 임시정부(臨時政府)로부터 제2차 독립운동대 조직의 사명을 띠고 평양(平壤)에 특파원으로 입국하였다. 1920년 8월에는 미국의원단(美國議員團)이 내한할 때 의원단에게 제출할 대한민국(大韓民國) 인민대표의 청원서와 영문 및 한글로 인쇄된 대한여자계 대표의 청원서 백여통과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로부터 서울의 양기탁(梁起鐸) 앞으로 보낸 서신을 휴대하고 오희문(吳熙文)과 함께 국내로 몰래 들어와 임무수행 중 일경에 탐지되어 동년 8월 14일 평양에서 붙잡혔다. 그리하여 평양경찰서(平壤警察署) 고등부에서 2주간 조사를 받고 서울헌병대로 압송되어 8개월간 헌병대 유치장에 구속되어 있다가 강서경찰서(江西警察署)로 이첩되어 석방되었지만 일제의 경찰과 헌병으로부터 장기간 구속된 상태에서 심한 고문을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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