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寅植
1879-09-20 ~ 1926-02-01·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인식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임실(任實) 사람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이에 반대하여 통감부에 항의문을 제출하고, 1907년 3월에는 나인영(羅寅永)·오기호(吳基鎬)·김동필(金東弼)·박대하(朴大夏)·이홍래(李鴻來)·정인국(鄭寅國)·김영채(金永采)·이광수(李光秀)·이용태(李容泰) 등과 함께 을사 5적을 주살하기로 계획하였으나 실패하고 진도(珍島)로 5년간 유배되었다. 1909년 음력 정월 15일 새벽에는 나인영·오기호·강 우(姜虞)·유 근(柳瑾)·정훈모(鄭薰模)·이 기(李沂) 등 수십인과 함께 서울 북구 재동 취운정(齋洞翠雲亭)아래 초가 북벽(北壁)에 단군태황조 신위(檀君太皇祖神位)를 모시고 제천(祭天)의 큰 의식을 거행하고, 단군교를 창시하여, 민족중흥에 이바지할 종교로 육성하였으며, 단군교는 1910년 6월에 교명을 대종교(大倧敎)로 고치고 포교활동을 통하여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길러냈다. 그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참가하였으며, 1919년에는 윤영기(尹永淇)와 연락하여 3·1독립운동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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