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逸奉
1892-11-2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일봉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중국 환인현(桓仁縣)에 근거를 둔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특무검찰(特務檢察)로서 평북 초산군(楚山郡) 남면사무소(南面事務所)를 공격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0년 음력 7월경 대한독립단원 김여정(金汝正)ㆍ석환옥(石煥玉)의 권유로, 초산군에 거주하는 김종섭(金鍾涉)ㆍ박찬봉(朴燦鳳)ㆍ이경주(李京?)ㆍ임계익(林桂益) 등과 함께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였다. 김종섭은 검찰(檢察), 박찬봉은 지방소집원(地方召集員), 김일봉ㆍ이경주는 특무검찰로 임명되었다. 1920년 10월 24일 김일봉 등은 군자금을 모집할 목적으로 초산군 남면사무소를 공격하여 전소시켰다. 면사무소를 공격하기 수일 전, 김일봉은 거사에 사용할 총기 다섯 자루를 이경주의 집으로 운반하고, 이경주는 총기를 하루 동안 집에 보관하였다가 거사에 사용였으며, 임계익은 거사 당일 총기 사용법을 가르쳤다. 김일봉은 1922년 2월 17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 미수 방조, 방화 방조, 총기화약류취체령시행규칙(銃器火藥類取締令施行規則)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4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