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子化
(1871)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자화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8년 음력 12월부터 1909년 4월까지 전북 태인군(泰仁郡)에서 이성화의진(李成化義陣)에 참여하여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의병장 이성화는 1908년 전북 고부(高阜)에서 창의하여 고부ㆍ태인ㆍ순창(淳昌)ㆍ부안(扶安)ㆍ정읍(井邑) 등지에서 1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활동하였다. 1908년 3월 고부, 6월에는 정읍ㆍ태인ㆍ고부ㆍ순창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09년 1월 6회, 2월에는 9회에 걸쳐 기습작전으로 일제 기관을 공격하였다. 1909년 4월 이성화의진은 신보현의진(申保鉉義陣)에 합세하여 순창군 가포곡(加布谷) 일대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였고, 5월 1일 태인군 인곡면(仁谷面), 5월 19일 고부군 벌말면(伐末面), 6월 20일 고부군 우덕면(優德面) 등지에서 일본 군경과 전투를 벌였다. 김자화는 1908년 음력 12월경 이성화의진에서 의병 40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고부군 답내면(畓內面) 예동(禮洞) 은참봉(殷參奉)의 집에서 당목(唐木)을 군수품으로 모집하고, 1909년 4월 5일 전북 태인군 읍내에 사는 일본인 강정전길(岡庭傳吉)의 집에서 권총(拳銃) 1정, 같은 해 4월 15일 도(刀) 1점을 획득하였다. 1909년 10월 7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 및 절도죄로 징역 15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2년 9월 13일 징역 5년으로 감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본관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이 인물의 본관을 직접 기재한 기록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