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在龜
1866-07-19 ~ 1916-07-15·대한제국
이명·자·호 準瑞(字), 晩悔(號)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재구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북 고창 출신으로 1906년 2월 최익현의진(崔益鉉義陣)의 소모사장(召募司長)에 임명되어 활동하였고, 1912년 임병찬(林炳瓚)이 조직한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06년 2월 최익현은 문인 최제학(崔濟學),임병찬 등과 전라도 태인(泰仁),순창(淳昌) 등지에서 각지에 격문을 보내어 문인들을 중심으로 113명의 동맹록을 만들었다. 동년 4월 13일 태인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강회를 열고, 각처의 포군(砲軍)을 모집하여 무기를 준비하였다. 최익현은 기병소(起兵疏)를 올리고 창의한 뒤, 정읍(井邑),순창(淳昌),곡성(谷城) 등지를 전전하며 군사와 무기를 확충하였는데, 김재구는 김양수(金陽洙),강종회(姜鍾會)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1914년 임병찬은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하고 투서운동과 태극기게양운동을 통해 국권회복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1914년 5월 대한독립의군부는 국권의 반환을 요구하는 투서를 전국적으로 발송하고, 동시에 국권의 반환과 일본군의 철병을 요구하는 전화와 태극기를 게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때 대한독립의군부는 편제를 제정하고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었는데, 임병찬 등은 전국 책임을 맡았고, 김재구는 김진기(金鎭基),강종회(姜鍾會),김건(金健) 등과 함께 고창군 책임자가 되어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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