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在炳
1893-01-26 ~ 1930-04-24·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재병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경북 대구(大邱) 덕산정(德山町) 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9일 계성학교(啓聖學校) 학생들의 주도로 만세시위를 일으키려다 이를 탐지한 일본 군경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이에 김재병은 이덕주(李德周)를 비롯한 시민 유지와 대구고보와 계성학교 학생들과 다음날 덕산정시장에서 다시 거사를 일으키기로 하고 태극기 제작 등 준비를 마쳤다. 10일 오후 4시 30분경 김재병은 이덕주,최동쇠(崔東釗) 등과 함께 태극기에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뒤 태극기를 휘날리며 만세를 외쳤다. 이를 신호로 군중들도 호응하여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감시하는 일본 군경들로 시위행진을 하지 못한 채 주동자와 시위군중 65명이 체포되었다. 이때 붙잡힌 김재병은 1919년 5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2011
대통령표창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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