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正國
(1882)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정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음력 11월 강원도 평창군(平昌郡)에서 고종황제 독살설(毒殺說)이 포함된 「격고팔역인민문(檄告八域人民文)」을 배포하였으며, 1921년 11월 독립을 주장하는 격문을 강릉군(江陵郡) 일대에 배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평소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사상에 공감하여 실현에 노력하던 중,1920년 음력 11월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大和面) 신리(新里) 사동(寺洞)에서 동리(同里)에 거주하는 서당 교사 김봉일(金鳳一)을 만나 서로 협력하기로 약속하고, 김봉일이 작성한 고종황제의 훙거(薨去)가 독살임을 알리는 「격고팔역인민문」을 교부받아 동지들에게 배포하였다. 1921년 11월 말경 김봉일의 아들 김도원(金道源)과 함께 각도 경찰부 및 민간 유지에게 배포할 문서를 작성하기로 결의하고, 동년 12월 2일 김봉일의 찬동을 얻었다. 김정국이 태평양회의(太平洋會議)에서 조선독립이 인정되었음을 김봉일·김도원 양인에게 설명하였으며, 3인은 이 사실에 기초하여 조선 거류 일본인을 일본으로 귀국시키라는 통고문을 작성하고 이를 각도 경찰부장에게 발송키로 하는 한편, 또 각지 민간 유지자에게 조선독립을 선전할 목적의 격문을 작성하여 발송키로 결의한 뒤, 평창군 대화면과 강릉군 등지에 배포하다 체포되었다. 1922년 2월 4일 구류되어 1922년 6월 9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소위 1919년 제령(制令) 제7호(政治에 관한 犯罪處罰의 件)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24년 4월 2일 함흥형무소(咸興刑務所)에서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2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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