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丁國
(1883)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정국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함북 온성(穩城) 사람이다. 김정국은 의군부(義軍府)에서 활동하였다. 김정국이 활동한 의군부은 3·1운동 후 북간도(北間島)에서 조직된 독립운동단체이다. 통칭 의군단(義軍團) 또는 의군산포대(義軍山砲隊)라고도 하였다. 처음 근거지는 왕청현(汪淸縣) 초모정자(草帽頂子)였으나 봉오동(鳳梧洞) 전투 이후 왕청현 명월구(明月溝)로 이전하였다. 의군부의 주요 간부는 본부의 경우 총재 이범윤, 총사령 김현규(金鉉圭), 참모장 진학신(秦學新), 총무부장 최우익(崔友翼), 군사부장 김청봉(金淸鳳), 외교부장 신 립(申立), 통신부장 지우강(池雨江) 등이며, 중부(中部)의 경우는 참모장 고 평(高平), 서무부장 이 을(李乙), 재무부장 김종헌(金鍾憲), 외교부장 김종환(金鍾煥), 통신부장 박 재(朴在), 군법원장 허승완(許承完), 헌병대장 최상운(崔尙雲), 군의감독(軍醫監督) 강문주(姜文周) 등이었다. 김정국은 간도 화룡현(和龍縣) 월신사(月新社) 유기리(揄基里)에 사는 김종환(金鍾煥)·최기영(崔琦泳) 등과 함께 1920년 4월부터 의군단장 홍범도(洪範圖)의 부하가 되어 여러 번 국내로 진입하여 군자금 6백여 원을 모금하였다. 이 사건으로 그는 종성(鍾城)경찰서에 체포되어 1924년 6월 6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징역 6년을 받고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995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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