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正文
(1882) ~ 1910-02-20·대한제국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정문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07년 일제는 헤이그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또한 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한국의 사법권·행정권 등을 장악하고 통감정치를 강화하였다. 주요 부서에 일본인 차관을 임명하는 등 한국 식민지화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1907년 8월에는 대한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으로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면서 의병운동은 전국적으로 더욱 확산되어 일어났다. 김정문은 1909년 음력 7월 23일 오후 12시경 자신의 집에 자칭 경성인(京城人)이라고 하는 임재선(林在善) 외 1명의 의병이 총 5정 등을 가지고 들어오자 그들의 휴대품을 숨겨주고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다. 24일 오후 1시경까지 이들을 자택에 숨겨주었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10월 6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7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0년 2월 20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2018
애국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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