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宗鍵
(1885) ~ 미상·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鍾鍵, 金鍾建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종건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1920년 평남 평양(平壤)에서 독립의용단(獨立義勇團) 지단(支團)에 참여하여 평안남도에 소재한 일제 관공서 폭파 계획을 지원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0년 6월 중 김송혁(金淞爀)ㆍ김의창(金義昌) 등과 평양기홀병원(平壤紀笏病院)에서 독립의용단의 지단을 조직하였다. 독립의용단은 상해(上海) 임시의정원(臨時議政院) 의장을 단장으로 하고 황해도(黃海道) 의원인 김석황(金錫璜)을 총무로 했다. 의용단은 중국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 있는 이탁(李鐸)이 회장인 한족회(韓族會)와 관전현(寬甸縣) 향로구(香爐溝)에 있는 안병찬(安秉瓚)이 회장인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大韓獨立靑年團聯合會) 등과 연합하여 이탁을 사령관으로 하는 연합기관을 조직하였다. 연합기관 소속 김예진(金禮鎭)ㆍ장혜근(張惠根)ㆍ장인갑(張仁甲) 등 12명은 1920년 7월 중 평남 평양에서 회합하여, 같은 해 8월 3일 오후 9시경 3대로 나뉘어 평남 제3부, 평양경찰서, 평양부청(平壤府廳)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연합기관이 작성한 최급경고문(最急警告文)을 평양 시내에 배포하면서 거사를 실행했다. 그러나 평양경찰서와 평양부청은 실패하였고, 평남 제3부 청사에 투탄하여 유리창과 외벽을 파괴하였다. 그리고 평양 칠성문(七星門) 밖에서 경계 중인 일본인 순사를 저격하여 순사 1명이 부상을 입었다. 김종건은 일제 관공서를 폭파하려는 연합기관 단원들에게 숙소와 음식물을 제공하고, 폭탄ㆍ권총ㆍ탄환의 보관, 『독립신문』을 배포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0년 12월 17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공소했으나, 1921년 2월 2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1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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