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宗林
1886-01-19 ~ 1973-01-26·일제강점기
이명·자·호 金鍾麟, 金鍾林, 金鍾麟, 金鍾林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종림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미주지역에서 조직된 공립협회(共立協會),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등에서 활약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07년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에서 공립협회(共立協會)에 가입하여『공립신보(共立新報)』발간에 참여하였고, 1909년 공립협회가 국민회(國民會)로 발전할 때 법무원의 임시대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10년 이후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 지방회에 회원으로 가입하여 대한인국민회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913년에는 흥사단(興士團) 함경도 위원에 선임되었고, 1919·20년 대한인국민회 지방위원으로 독립운동자금을 직접 출연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금모집에도 힘을 쏟아 대한인국민회와 대한민국임시정부 구미위원부에 여러 차례 독립운동자금을 제공하였다. 그는 또한 1920년 노백린(盧伯麟)과 함께 캘리포니아 윌로우스[California Willows]에 비행사양성소를 설립하여, 자금을 제공하고 고문(顧問)으로 비행사 양성에 기여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5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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