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鍾壽
1909-02-18 ~ 1947-05-05·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종수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전남 장성(長城) 사람이다. 수원고등농림학교(水原高等農林學校) 농학과에 재학중이던 1928년 10월 동교 학생들이 조직한 농촌계몽 단체인 조선개척사(朝鮮開拓社) 운동에 가담하여 활동하다가 퇴교처분을 받았다. 1931년 11월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일형면(日荊面) 서둔리(西屯里)에 소재하는 화서야학원(華西夜學院) 교사인 이연산(李連山)·조만원(趙萬元)과 함께 야학생들을 장차 독립전선에 나아가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하여 훈련시키는 방안을 협의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일경에게 붙잡혔다. 1936년 11월 1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1937년 4월 12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0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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