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鍾憲
(1867) ~ 미상·일제강점기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종헌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김종헌은 1920년 재만 독립군단인 의민단(義民團)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의민단은 1920년 4월경 북간도 왕청현(汪淸縣) 춘화향(春華鄕) 알아하(嘎呀河)에서 천주교 신도와 항일의병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독립군단이었다. 성립 초기 단장은 방우룡(方雨龍)이었으며, 부단장 김연군(金演君)이었다. 성립 초 이 독립군단은 약 200명의 독립군 병력과 이들을 모두 무장시킬 수 있는 군총 200정을 보유하였다. 청산리대첩 시 본영이 있는 알아하를 떠나 화룡현 이도구(二道溝) 방면에서 홍범도가 이끄는 연합부대에 가담하였다. 그리하여 일본군을 대격파한 청산리대첩에 참가하였고, 대첩 후 북만주로 이동하였다. 북만주 영고탑(寧古塔)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하던 의민단은 1922년 8월 독립군단 통합운동에 가담하여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혈성단(血誠團)·의군부(義軍府)·광복단(光復團)·신민단(新民團)·대진단(大震團) 등과 합병해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결성하였다. 의민단의 성립 초부터 참모로 임명되어 활동한 김종헌은 이 군단이 북만주로 옮긴 1922년 경에도 본부의 임원이 되어 항일활동에 앞장섰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2009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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