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仲鉉
1914-07-20 ~ 1974-08-20·현대
독립유공자 예우에 함께하기
국가보훈부가 운영하는 ‘모두의 보훈 드림’에서 보훈기금에 기부할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유족의 예우·복지 사업에 쓰이며, 김중현 님이나 그 후손에게 직접 전달되지는 않습니다.
모두의 보훈 드림제주(濟州) 사람이다. 천주교 신자이던 그는 1939년 7월경부터 가을 무렵까지 제주읍 천주교회의 아일랜드인 선교사 손 신부(孫神父:본명 다우슨 패트릭)에게 수 차에 걸쳐, 제주도 대정면(大靜面) 모슬포(慕瑟浦)의 해군비행장에는 대규모의 격납고가 설치되어 30대 가량의 비행기가 계류 중이고 다수 군인이 주둔하며 해상에도 항상 수척의 군함이 정박하고 있다는 사실과, 모슬포 비행장에서 발진한 일본 해군기가 바다를 건너 중국의 상해(上海)를 폭격하다 중국군의 포격을 받아 퇴각하던 중 추락했다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또한 1940년 12월부터 1941년 여름에 걸쳐 위의 손 신부 및 허봉학(許鳳鶴)·하성구(河成九) 등 다른 신도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수 차에 걸쳐, "일본의 신문들은 독영전쟁(獨英戰爭)에서 독일이 대승하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으나 실은 허위보도에 지나지 않는다, 전황은 영국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중일전쟁이 장기화하면 일본군은 물자부족으로 인하여 결국 패전할 것이다", "정감록(鄭鑑錄)의 예언에 따르더라도 중일전쟁은 일본의 패전으로 끝날 것이다"는 등의 발언을 하였다. 이 무렵 일제는 제주도를 중국에 대한 도양폭격(渡洋爆擊)의 발진기지로 만들면서 도내 반일세력을 색출 제거코자 하여, 우선 적성국(敵性國)인 영국 국적의 아일랜드인 선교사들과 그들이 소속된 천주교회 조직을 탄압 파괴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 또한 위의 발언들로써 군사기밀을 유출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했다는 이유로 1941년 말에 손 신부 등과 함께 일경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였다. 그 후 194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국방보안법 및 군기(軍機)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1년과 육·해군형법 위반으로 금고(禁錮) 10월이 병합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993
애족장 서훈
대한민국 정부 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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